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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전 가야인의 손자국이 완벽하게 원형으로 남은 가마터가 창녕군 퇴천리에서 발견됐다. 가마의 천정부까지 원형 그대로 발굴된 가마터는 창녕 퇴천리 가마터가 최초로 문화재청과 역사학계에서 높은 관심을 갖고 있어, 창녕지역의 고대 국가인 ‘비화가야의 역사문화’ 복원에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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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퇴천리 토기가마터.(회구부에서 본 모습) 회구부와 연소부는 물론, 천정까지 완벽히 보존된 가마터는 국내 최초로 학계의 높은 관심을 사고 있다.
창녕군은 지난 6일 오후, 창녕군 퇴천리 산78번지(민가 바로 옆) ‘창녕 퇴천리 토기가마터' 발굴현장’서 공개행사를 가졌다. 발굴을 맡은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창녕 퇴천리 비화가야 가마터는 지난 91~94년 창녕 여초리 가마터에 이어 25년만에 조사된 대형 토기생산지이며 그 형태가 가장 완전한 상태인 동시에 여러차례 보수를 통한 가마의 구조 변화도 볼수 있는 등 기존에 확인되지 않았던 다양하고 중요한 고고자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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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또 “창녕 퇴천리가마터는 4C~5C초에 조성된 것으로 호류를 주로 생산하던 가마로 특히, 제작 공정상 여러 부윌 나누어 제작한 뒤 접합하는 등의 성형과 소성에 매으 높은 기술을 요하는 대호(큰 항아리)를 주생산품으로 삼아 당시 가야인들의 우수한 예술성을 보여준다”며 “이번 가마터발굴조사를 시작으로 보다 입체적인 비화가야사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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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터의 규모는 길이 15m, 너비2.3m, 깊이2.3m로 지금까지 확인된 국내 최대이며, 10여차례에 걸친 토기 생산과 벽체(두께 1.3m)와 천정 보수의 흔적을 살필수 있다. 가마터 내부 천정과 벽면에는 짚을 섞은 황토를 손으로 일일이 바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황토와 섞여 있는 짚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장에 동행한 한 공무원은 가마터 내부의 손자국에 자신의 손을 대 본 뒤, “1600년전 창녕 가야인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벅찬 감동을 받았다”면서 “찬란한 유물을 남겨주신 옛 가야의 조상들께 감사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가마터 내부 천정과 벽면에는 당시 가야인 도공들이 짚을 섞을 황토를 손으로 시계방향으로 바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창녕 토기가마터의 구조는 회구부, 연소부, 소성부,연도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소부의 위치가 차츰 위로 올라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이 가마터에서 1회 12기 가량의 대호를 구워낸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유물은 화로모양 그릇받침, 짦은목항아리등이며 발굴지 북서쪽 조사경계부 인근의 퇴적층상에 가마벽체편 및 소토, 토기현등이 포함된 층이 발견되어 구릉상부에 또 다른 토기가마가 있을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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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터 1기외에도 토기를 빚는 데 필요한 흙을 모아두는 토취장과 폐기장, 배수로등이 함께 발견됐다.
창녕퇴천리 가마터는 지난 92년 최초 발견된 이후, 방치되어오던 것을 창녕군이 동아세아문화재단에 발굴을 의뢰해 올해 5월30일부터 6월 13일까지 시굴조사를 거쳐 7월23일부터 본격 발굴작업을 해왔다. 한정우 군수는 "국내 최초로 완벽한 원형의 토기가마터 발굴로 비화가야사 복원의 토대가 될 것이며, 특히 현재 진행중인 비화가야 고분과 산성등의 조사와 함게 유적 보존 방안을 수립하고, 문화재 지정도 추진 할 것"이라며 "송현동 고분등 수 많은 유적지와 문화재와 함께 역사문화탐방 벨트를 주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가마터 발굴현장 공개행사에는 지상파를 비롯 국내 유수 언론사와 학자등 60여명이 참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